정정훈 '헤레틱' 촬영감독 "휴 그랜트 연기, 찍는 나도 섬뜩해"
美 A24 스릴러 '헤레틱'…"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촬영"
"한국 영화 그리워…자리 비워도 내 이름 기억할 때 돌아갈 것"
[스튜디오오르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최근 개봉한 스콧 벡·브라이언 우즈 감독의 '헤레틱'은 영국 배우 휴 그랜트의 연기 변신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기 집에 찾아온 모르몬교 여성 전도사들을 극단으로 내모는 무신론자 리드 역을 소화했다.
리드는 맹목적인 믿음에 사로잡혀 두 전도사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하며 극 전체에 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해외 평단이 그랜트가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에서 보여준 로맨틱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다고 극찬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제가 찍으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받았어요. 참 대단한 배우구나 했지요.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공포물로 주목받는 미국 독립영화 배급사 A24의 신작 '헤레틱'의 카메라 작업을 책임진 인물은 바로 한국인 정정훈 촬영감독이다.
7일 화상 대화 시스템으로 연합뉴스와 만난 정 촬영감독은 시시각각 변하는 그랜트의 표정 연기를 홀린 듯 봤다며 '헤레틱'을 제작 과정을 들려줬다.
그는 "그랜트가 어떤 대사를 하자 제 뒤에 앉아 있던 동료들이 '미쳤다'며 소리를 질렀다"면서 "영화를 찍으며 스태프들이 그 정도로 감탄사를 터뜨리는 건 저도 처음 봤다"고 돌아봤다.
""(다른 배우들인)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를 찍다가 즉흥적으로 카메라를 돌려서 그랜트 쪽을 비췄는데, 자기가 나오는 신이 아닌데도 표정이 살아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그랜트가 흐트러진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매번 촬영이 끝나면 모든 기력을 다 소진해서 기진맥진해 있었죠."
정 감독이 그랜트와 호흡을 맞춘 건 2023년 개봉한 티모테 샬라메 주연의 뮤지컬 영화 '웡카'에 이어 두 번째다. 그랜트는 '웡카'에선 코믹 캐릭터인 '움파룸파'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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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은 "'웡카'에서 대부분 모션 캡처(몸에 센서를 부착해 움직임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기술)를 썼기 때문에 저와 제대로 영화를 찍은 것은 '헤레틱'이 처음인 셈"이라면서 "그래서인지 촬영 초반엔 저를 그다지 신뢰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그러나 촬영이 거듭될수록 신뢰가 쌓였고 시사회에서 만난 정 감독의 두 아이를 안아줄 정도로 친분도 생겼다고 그는 회상했다.
'헤레틱'은 외딴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지만 역동적인 촬영 덕분에 답답한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정 감독은 카메라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세트장 바닥에 댄스 플로어를 설치하고 여러 각도에서 배우들을 찍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 속 제3의 전도사가 된 것처럼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이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따라가려 했다"며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나 즉흥적으로 움직였는데, 아마 제가 촬영한 영화 중 가장 많이 움직인 영화일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그는 할리우드 진출 후 창의성을 향한 묵은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미국에서 작업하다 보면 '내가 여기 왜 와 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관객에게 영화라는 콘텐츠를 팔기 위해 만들어진 전형적인 틀을 따라가는 걸 알게 모르게 강요받거든요. '헤레틱'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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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를 계기로 미국 영화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공포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차지한 '그것'(2017)을 비롯해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커런트 워'(2019), 제시 아이젠버그·에마 스톤 주연 '좀비랜드: 더블 탭'(2019), 톰 홀랜드 주연 '언차티드'(2022) 등 굵직한 작품에서 카메라를 잡았다.
그는 '올드보이'(2003)부터 '아가씨'(2016)까지 거의 모든 박 감독의 영화를 촬영했지만, 미국 스케줄로 인해 '헤어질 결심'(2022)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정 감독은 "굉장히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안 찍기를 잘한 것 같다"면서 "제가 찍었다면 지금의 '헤어질 결심'처럼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선 촬영감독은 촬영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강한데, 저는 항상 제 말에 귀를 잘 기울여주는 감독과 일하고 싶다"면서 "한국에서는 그런 분이 박 감독님이었다"고 강조했다.
"한국 영화가 그립기도 해요. 한국 영화 현장에서 느낀 열정을 미국에서 느끼기란 참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아직 제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1∼2년 정도 자리를 비우더라도 제 이름을 기억해줄 때쯤 자유롭게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며 작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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