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시간끌기 성공…'무늬만 휴전' 관측에 속타는 우크라
가시적 첫 휴전인데…맥락 보면 푸틴 완승 '시간적 발판'
젤렌스키 "러, 휴전 거부한 것"…외신, '평화 첫단추' 될지 반신반의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미국과 러시아가 18일(현지시간) 합의한 우크라이나 부분 휴전은 러시아에 훨씬 유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의 열세가 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계속 밀어붙일 시간적 발판이 생겼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지연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 시간 반 이상 전화 통화를 하고 에너지·인프라 분야의 휴전에 합의했다.
백악관은 이 같은 부분적 휴전을 '평화를 향한 움직임의 시작'이라고 자평했다.
처음으로 휴전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고무적인 면이 있지만 그 내용과 맥락을 뜯어보면 그런 평가와 거리가 있다.
러시아는 겨울 추위를 무기로 이용한다는 차원에서 늦가을과 겨울에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집중 타격해왔다.
이날 합의에 따라 휴전이 이뤄지는 대상은 러시아의 집중 공격 유인이 상대적으로 작아진 표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러시아가 현재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는 부분은 우크라이나가 작년에 기습적으로 점령한 쿠르스크 지역의 탈환이다.
쿠르스크는 종전협상이 시작될 경우 우크라이나의 최대 협상카드로 거론되지만 현재 러시아가 완전한 탈환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는 동부 지역에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지키거나 늘리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 지역은 나중에 종전협상이 이뤄지면 그대로 양국 국경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현재 쿠르스크에서 완전한 우세, 우크라이나 영토의 20%에 해당하는 동부전선과 크림반도에서 점령지 굳히기를 시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19% 정도를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 [전쟁연구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인프라에 국한된 이번 부분 휴전은 일단 전황과는 거의 무관한 상징적인 의미만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애초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앞두고 우크라이나가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누차 밝혔다.
결국 푸틴 대통령의 뜻대로 됐다.
우크라이나가 더욱 속이 타들어 가는 원인은 향후 협상에서도 전면 휴전 같은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날 합의에서 전면 휴전을 위한 조건으로 기존에 제시해온 타협 불가능한 종전 조건을 되풀이했다.
그는 분쟁 해결의 핵심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의 군사 원조 및 정보 공유의 완전한 중단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는 종전 후 러시아의 재침공 가능성을 우려하는 우크라이나, 유럽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대화의 세부 내용들이 전해지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로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 푸틴은 사실상 전면 휴전 제안을 거부했다"며 "전쟁을 질질 끌려는 푸틴의 시도를 세계가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남부와 북부에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한다며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약화하는 데 혈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 사이에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대화에 의문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나왔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CCL)의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푸틴이 일시 휴전을 거부했다"고 평가했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그는 에너지 시설과 민간 인프라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러시아가 키이우의 어린이 병원을 공격했을 때도 그는 러시아 미사일이 군사적으로만 사용된다고 주장해왔다"라고 경계했다.
글로벌 미디어들에서도 미국과 러시아 정상의 합의가 '무늬만 휴전'이 아니냐는 비관이 쏟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이 극단적 목표에 대해 타협할 의지가 있다는 징후는 없었다"며 "그의 목표는 사실상 독립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존립을 끝내고, 옛 철의 장막 동쪽으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 대부분을 되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30일 휴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앞으로 영토를 놓고 경쟁하는 동안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도시 항구 등에 대한 공격이 계속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피비린내 나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은 그대로 살상지대로 남고 드론과 미사일 폭격도 우크라이나 전역에 계속 쏟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관을 증명하듯 미국과 러시아 정상의 통화 직후 우크라이나 동부와 중부 지역에서 공급 경보가 울리고 키이우 중심부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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